
사블, 사운드블라스터(Sound Blaster)를 기억하십니까. 만일 이 이름이 친숙하게 느껴지신다면 분명 컴퓨터를 10년 이상 사용해 온 분이실 겁니다.
싱가포르의 멀티미디어 업체 ‘크리에이티브’가 개발한 사운드블라스터는 90년대 초반 이후로 10년이 넘도록 PC용 사운드의 발전을 주도한 당대 최고의 컴퓨터 주변기기 중 하나였습니다.
PC는 원래가 기업용 전산을 위한 기계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베이스나 스프레드시트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걸 주 목적으로 개발되어 왔죠. 하지만 PC가 개인의 엔터테인먼트(대표적으로 게임)에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소리의 문제는 중요한 관심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게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하드웨어는 애드립(AdLib)이라는 사운드카드였습니다. FM변조방식의 이 사운드카드는 요즘의 휴대폰보다도 훨씬 못미치는 소리를 내주었지만 당시로선 충격 그 자체로 게임환경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다줍니다.
PC게이머들을 열광케한 바로 그 제품, '애드립' 카드
사운드블라스터는 애드립이 가져다 준 혁명이 채 보편화 되기도 전에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훨씬 강한 충격을 선사해줬습니다. 조이스틱 같은 컨트롤러를 연결할 수 있는 게임포트를 내장하였지만 애드립과의 경쟁에서 실패한 게임블라스터를 더욱 발전시켜 애드립의 기능을 그대로 구현하면서도 8비트 DAC와 미디기능을 추가한 사블1.0과 녹음까지 가능하게 한 사블2.0의 대히트로 PC의 멀티미디어 활용의 비약적인 확대와 전세계 시장 평정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이후 90년대 중후반에 거쳐 사블은 CD-ROM인터페이스 내장과 16비트 PCM 재생, MPU-401 미디 인터페이스 등 컴퓨팅 환경의 가장 화려한 발전을 이뤄내었습니다. 당시 후발주자들이 호환 카드를 많이 내놓았지만 도스환경에서의 불편함과 불안정한 사후 기술지원 등으로 잠깐 빛을 보고 사라지는 동안 사블의 아성은 계속 탄탄해져만 갔죠.
PC 사운드 역사의 이정표가 된 사운드블라스터 2.0
21세기에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운영체제가 표준이 되면서 사운드블라스터는 더 이상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이렉트X 규격을 따르는 다른 칩들로도 얼마든지 좋은 음질의 사운드를 재생할 수 있게 되었고, 사용자들은 더 이상 IRQ나 DMA 같은 하드웨어 충돌에 신경을 쓰면서 프로그램별로 사운드 설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사블을 써야 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건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사블을 표준으로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블은 현재도 오디지와 X-Fi 시리즈 등 우수한 품질의 사운드카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만 이제 사용자들은 더 이상 사블에 연연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능은 강력하지만 이젠 별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사운드블라스터 X-Fi
현재는 모든 메인보드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시판되는 메인보드 자체 내에 사운드 기능이 내장되어 있고, 미세한 음질이나 특수한 사운드모드가 필요하지 않다면 이런 내장 사운드만으로도 훌륭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7만원 남짓한 메인보드에서 7.1채널 입체 사운드를 제공하고 SPDIF 광출력까지 지원하는데 4~5만원을 더 주고 MP3 정도를 듣기 위해 사운드카드를 구입할 필요성은 잘 느껴지지 않겠죠.
혹시 여러분들은 지금 별도의 사운드카드를 쓰고 계신가요? 쓰고 계시다면 사운드블라스터인지 다른 브랜드의 제품인지요? 사운드블라스터를 쓰시는 분 중 특별히 이것 아니면 안된다는 이유가 혹시 있으십니까?
저는 미세한 잡음이 내장 사운드보다는 덜 하고 CPU 점유율이 조금이라도 낮기 때문에 집에서는 이미 7년 가까이 쓰던 사블 라이브!를 쓰고 있지만 사무실에서는 메인보드 내장 사운드를 아무런 불편 없이 쓰고 있습니다.
사운드블라스터가 예전처럼 PC의 필수 구성품이 될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까요?